본질로 돌아가라, 말씀의 등불을 다시 밝힐 때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1-08 08:30
본문
오늘날 한국 교회를 둘러싼 소식들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강단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고뇌에 찬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교회의 사유화와 세습이라는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십일조와 같은 신앙의 실천은 세속적 가치관에 흔들리고,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다음 세대를 향한 교회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이 모든 현상은 각기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의 깊은 곳, 곧 ‘말씀의 부재’라는 영적 기근을 향하고 있다.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가 빛을 잃으면 배들이 방향을 잃고 암초에 부딪히듯, 교회가 말씀의 빛을 잃으면 세속의 파도에 휩쓸려 좌초하게 된다. 강단에서는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파헤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기보다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기교가 앞서고,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직이 아닌 사유재산처럼 대물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도들은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기보다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약속하는 값싼 위로에 안주하려 한다. 레위기의 제사법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당장의 필요를 채워줄 기복적 신앙에 머무는 것이다.
중세 암흑기, 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고 성경의 권위가 인간의 전통 아래 놓였을 때, 알프스 산자락에는 ‘발도파(Waldensians)’라 불리는 신실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미신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박해를 피해 동굴과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그들은 신약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필사하며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의 신조는 ‘어둠 속에 빛이 비치다(Lux lucet in tenebris)’였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이 붙들었던 것은 교황의 칙령이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발도파의 역사는 교회가 가장 어두운 시절을 지날 때, 그 길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은 오직 말씀뿐임을 피로써 증언한다.
오늘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 역시 발도파의 신앙고백과 다르지 않다.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말씀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존 스토트와 옥한흠 목사가 평생을 바쳐 씨름했던 것처럼, 설교자는 성경 본문에 천착하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가감 없이 대언해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욕망이 아닌 성경적 원칙 위에 세워진 거룩한 공동체임을 선포하며, 모든 불의한 세습과 사유화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성도들은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씀의 원리를 깊이 상고하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출생의 위기 속에서도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거대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펴고,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한 결단에서 시작된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금 이 진리의 말씀 앞에 겸허히 엎드려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이 빛을 따라갈 때, 우리는 비로소 길을 찾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가 빛을 잃으면 배들이 방향을 잃고 암초에 부딪히듯, 교회가 말씀의 빛을 잃으면 세속의 파도에 휩쓸려 좌초하게 된다. 강단에서는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파헤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기보다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기교가 앞서고,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직이 아닌 사유재산처럼 대물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도들은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기보다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약속하는 값싼 위로에 안주하려 한다. 레위기의 제사법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당장의 필요를 채워줄 기복적 신앙에 머무는 것이다.
중세 암흑기, 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고 성경의 권위가 인간의 전통 아래 놓였을 때, 알프스 산자락에는 ‘발도파(Waldensians)’라 불리는 신실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미신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박해를 피해 동굴과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그들은 신약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필사하며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의 신조는 ‘어둠 속에 빛이 비치다(Lux lucet in tenebris)’였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이 붙들었던 것은 교황의 칙령이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발도파의 역사는 교회가 가장 어두운 시절을 지날 때, 그 길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은 오직 말씀뿐임을 피로써 증언한다.
오늘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 역시 발도파의 신앙고백과 다르지 않다.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말씀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존 스토트와 옥한흠 목사가 평생을 바쳐 씨름했던 것처럼, 설교자는 성경 본문에 천착하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가감 없이 대언해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욕망이 아닌 성경적 원칙 위에 세워진 거룩한 공동체임을 선포하며, 모든 불의한 세습과 사유화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성도들은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씀의 원리를 깊이 상고하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출생의 위기 속에서도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거대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펴고,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한 결단에서 시작된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금 이 진리의 말씀 앞에 겸허히 엎드려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이 빛을 따라갈 때, 우리는 비로소 길을 찾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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