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음 속, 왕의 통치를 선포하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25 08:30
본문
포성은 멎지 않고, 낯선 바이러스의 공포가 문턱을 넘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프랑스에서 전해진 샤몬다 바이러스의 비보는 이 시대가 직면한 불안과 파국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인간은 저마다의 해법을 모색한다. 예술과 행동주의를 결합해 사회 변화를 도모하려는 시도처럼,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호소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그러나 짙은 안개 낀 항구에서 등대를 찾는 선원처럼, 인류는 근원적인 방향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행동주의가 구조적 변화를 촉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긁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균열, 즉 죄와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비극의 근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메울 수 없다. 이는 마치 낡고 해진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붓는 것과 같아, 결국 모든 것이 터져버릴 위태로운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절망의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소식을 전해야 할 거룩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로버트 레이몬드 박사가 역설했듯, 복음 전도(evangelism)의 본질은 단순히 개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이는 전쟁과 질병, 불의가 창궐하는 이 땅을 향해, “너희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고 외치는 장엄한 선언이다. 복음은 절망적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값싼 아편이 아니라, 그 현실 한복판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알리는 우렁찬 개가(凱歌)다.
이 위대한 선포가 한 사람의 삶으로 온전히 증명된 역사가 있다. 최근 그의 생애가 국내에 소개된 OMF 2대 총재 딕슨 호스트가 바로 그 증인이다. 영국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의 포병 장교였던 그는 세상이 보장하는 모든 영광과 안락을 기꺼이 뒤로하고, 미지의 땅 중국 내륙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그는 허드슨 테일러의 뒤를 이어 35년간 거대한 선교단체를 이끌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세상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스트라이킹한 행동’이나 ‘예상치 못한 장면’으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영웅적 지도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사람’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의 능력은 화려한 전략이나 유창한 웅변이 아닌, 골방에서 드리는 무릎 꿇는 기도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삶 자체가 세상의 요란한 구호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는 복음의 선포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복음의 본질을 오래전에 노래했다. 그의 외침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 가슴을 다시 한번 뜨겁게 울린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이 말씀처럼, 교회의 발걸음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문제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해답이신 왕의 통치를 알리는 데 있다.
전쟁의 포화와 바이러스의 위협, 사회적 갈등의 소음이 가득한 시대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세상을 닮은 방법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우리는 복음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딕슨 호스트처럼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철저히 감추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하심을 우리의 삶과 입술로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왕의 음성만이 온 땅에 울려 퍼질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 우리는 다시 산을 넘는 복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행동주의가 구조적 변화를 촉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긁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균열, 즉 죄와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비극의 근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메울 수 없다. 이는 마치 낡고 해진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붓는 것과 같아, 결국 모든 것이 터져버릴 위태로운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절망의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소식을 전해야 할 거룩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로버트 레이몬드 박사가 역설했듯, 복음 전도(evangelism)의 본질은 단순히 개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이는 전쟁과 질병, 불의가 창궐하는 이 땅을 향해, “너희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고 외치는 장엄한 선언이다. 복음은 절망적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값싼 아편이 아니라, 그 현실 한복판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알리는 우렁찬 개가(凱歌)다.
이 위대한 선포가 한 사람의 삶으로 온전히 증명된 역사가 있다. 최근 그의 생애가 국내에 소개된 OMF 2대 총재 딕슨 호스트가 바로 그 증인이다. 영국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의 포병 장교였던 그는 세상이 보장하는 모든 영광과 안락을 기꺼이 뒤로하고, 미지의 땅 중국 내륙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그는 허드슨 테일러의 뒤를 이어 35년간 거대한 선교단체를 이끌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세상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스트라이킹한 행동’이나 ‘예상치 못한 장면’으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영웅적 지도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사람’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의 능력은 화려한 전략이나 유창한 웅변이 아닌, 골방에서 드리는 무릎 꿇는 기도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삶 자체가 세상의 요란한 구호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는 복음의 선포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복음의 본질을 오래전에 노래했다. 그의 외침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 가슴을 다시 한번 뜨겁게 울린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이 말씀처럼, 교회의 발걸음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문제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해답이신 왕의 통치를 알리는 데 있다.
전쟁의 포화와 바이러스의 위협, 사회적 갈등의 소음이 가득한 시대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세상을 닮은 방법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우리는 복음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딕슨 호스트처럼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철저히 감추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하심을 우리의 삶과 입술로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왕의 음성만이 온 땅에 울려 퍼질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 우리는 다시 산을 넘는 복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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