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세상의 기초, 진리의 기둥으로서의 교회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24 08:30
본문
오늘 우리에게 당도한 소식들은 세계가 마치 거대한 지각 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수장이 직접 나서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논하며 창조 질서의 근간인 가정을 흔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아 무고한 생명들이 스러져간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인의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개별적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에는 하나의 공통된 흐름,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절대적 진리가 해체되는 시대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교회사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제공한다.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의 거센 물결이 교회 전체를 휩쓸었던 때를 상기해보라. 당대 최고의 권력이었던 로마 황제들마저 이단 사상에 동조했고, 수많은 주교들이 변절했다. 세상의 흐름은 명백히 아리우스주의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일어섰다. 그는 “세상이 너를 반대한다면, 나는 세상을 반대한다(Athanasius contra mundum)”고 외치며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 즉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는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려 다섯 번의 유배를 감수했다. 그의 외로운 투쟁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는 대신, 영원한 진리의 닻을 굳건히 내리는 길을 택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21세기의 아타나시우스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진보된’ 윤리를 말하며 교회를 유혹하고 압박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변화무쌍한 요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있다. 공산 정권의 폭압 아래서도 “악은 악이며, 악을 선이라 부를 수 없다”고 외치다 순교한 폴란드의 예지 포피에우슈코 신부처럼, 불의와 거짓에 맞서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천체의 운행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원주민을 기만하고 억압했던 콜럼버스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교회는 결코 성경적 권위나 신앙의 이름으로 성도와 이웃을 기만하거나 조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분쟁과 민족주의의 광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사랑을 전하며,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기초가 흔들릴수록, 교회는 더욱 굳건히 서서 진리의 기둥과 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등불을 든 자의 사명은 더욱 막중해진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성경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할 때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2-4)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교회사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제공한다.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의 거센 물결이 교회 전체를 휩쓸었던 때를 상기해보라. 당대 최고의 권력이었던 로마 황제들마저 이단 사상에 동조했고, 수많은 주교들이 변절했다. 세상의 흐름은 명백히 아리우스주의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일어섰다. 그는 “세상이 너를 반대한다면, 나는 세상을 반대한다(Athanasius contra mundum)”고 외치며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 즉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는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려 다섯 번의 유배를 감수했다. 그의 외로운 투쟁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는 대신, 영원한 진리의 닻을 굳건히 내리는 길을 택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21세기의 아타나시우스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진보된’ 윤리를 말하며 교회를 유혹하고 압박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변화무쌍한 요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있다. 공산 정권의 폭압 아래서도 “악은 악이며, 악을 선이라 부를 수 없다”고 외치다 순교한 폴란드의 예지 포피에우슈코 신부처럼, 불의와 거짓에 맞서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천체의 운행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원주민을 기만하고 억압했던 콜럼버스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교회는 결코 성경적 권위나 신앙의 이름으로 성도와 이웃을 기만하거나 조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분쟁과 민족주의의 광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사랑을 전하며,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기초가 흔들릴수록, 교회는 더욱 굳건히 서서 진리의 기둥과 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등불을 든 자의 사명은 더욱 막중해진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성경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할 때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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