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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세우는 소망의 공동체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20 08:30

본문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시대의 아픔을 파편적으로 비춘다. 알바니아의 거리에서는 공권력과 시위대의 폭력이 충돌하며 불길이 치솟고, 우크라이나의 크라마토르스크에서는 30년간 지역사회의 영적 피난처였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는 비단 특정 지역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어머니는 연극 오디션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자녀에게 염려 대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편지로 호소하며, 우리 시대의 만연한 불안을 드러낸다. 인간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시드니 올림픽 성화 봉송의 해프닝은, 이 모든 혼돈의 근원에 인간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세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다 상처 입고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이 폭력으로 변질되고, 평화의 상징이어야 할 교회가 전쟁의 제물이 되며, 개인의 삶은 미래에 대한 염려로 마비된다. 인간의 오만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필연적으로 붕괴의 운명을 맞는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절망의 폐허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서사가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증언한다.

12세기, 알프스 산맥의 척박한 골짜기에서 살아가던 발도파(Waldensians)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에 맞서 성경적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다 혹독한 박해에 직면했다. 마을은 불탔고, 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졌으며, 수많은 이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실패하고 소멸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바르브(Barbes)’라 불리는 순회 설교자가 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 전역을 떠돌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들은 무너진 예배당이 아닌, 핍박받는 성도들의 연대와 동역 그 자체를 교회로 삼았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빛난다(Lux lucet in tenebris)’는 그들의 표어처럼, 발도파는 가장 깊은 절망의 땅 위에서 소망의 공동체를 세웠던 것이다.

오늘의 뉴스 속에서 우리는 발도파의 후예들을 발견한다. TWR(Trans World Radio)이 ‘변화의 시대, 동역’을 주제로 21개국 지도자들을 모아 협력을 모색하는 모습은, 흩어졌으나 하나 된 광야의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건물은 파괴되었어도 성도들의 믿음까지 파괴할 수는 없으며,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로 하나님의 주권을 구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시대의 고통과 성도의 소망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22-25)

지금은 탄식의 시대다. 그러나 우리의 탄식은 절망의 절규가 아닌, 새 시대를 향한 거룩한 진통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견고한 건물과 조직이라는 안정감을 넘어, 세상의 폐허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소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무너진 곳에서 함께 울고, 두려워하는 이의 손을 잡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참음으로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동역이며, 잿더미 위에서 영원한 소망을 세우는 교회의 참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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