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의 잿더미와 부흥의 불씨 사이에서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3 08:30
본문
나이지리아 플래토주의 메마른 땅이 순교의 피로 붉게 물들고, 20여 년 전 9.11 테러가 남긴 상흔이 여전히 인류의 집단적 기억을 할퀴는 시대에, 유럽의 심장부 독일에서는 조용한 부흥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 복음주의 교회 연맹의 세례자 수가 4년간 74% 증가했다는 통계는 세속화의 거센 파도 앞에 선 유럽 교회의 작지만 의미 있는 저항이며,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자치정부가 한 복음주의 목회자를 지역의 역사적 인물로 조명한 사건은 복음이 사회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줌의 빛에 취해 세상의 짙어지는 그림자를 외면할 수 없다. 기독교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는 특정 지역의 비극을 넘어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고, 강대국 간의 갈등은 문화 교류의 다리마저 끊어내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기술 발전의 현장은 인류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바벨탑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오늘의 세계는 박해의 잿더미와 부흥의 불씨가 공존하는 역설의 장(場)이다.
이러한 시대적 혼돈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나치 독일의 광기 어린 폭압에 맞서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다. 그는 안락한 망명의 길을 포기하고 고난의 조국으로 돌아와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그의 선택은 정치적 행위 이전에, 불의한 권력 앞에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 신앙고백적 결단이었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통렬히 비판하며, 제자도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값비싼 은혜'를 사는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했다.
오늘날 독일 땅에서 피어나는 부흥의 불씨는 본회퍼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뿌린 눈물의 기도와 순교의 피 위에 맺힌 열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의 순교자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설교를 남기고 있다. 세상의 눈에는 무력한 패배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서막이 된다. 이는 성경이 증언하는 불변의 진리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5)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세계 곳곳에서 형제들이 겪는 박해의 소식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세속적 성공과 번영이라는 '값싼 은혜'에 안주하며 시대의 어둠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금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박해의 잿더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을 증거하고, 부흥의 작은 불씨를 온 세상을 밝히는 횃불로 키워낼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기술의 진보나 정치적 안정에 있지 않고, 오직 어둠을 이기시고 온 세상을 비추시는 영원한 빛,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줌의 빛에 취해 세상의 짙어지는 그림자를 외면할 수 없다. 기독교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는 특정 지역의 비극을 넘어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고, 강대국 간의 갈등은 문화 교류의 다리마저 끊어내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기술 발전의 현장은 인류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바벨탑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오늘의 세계는 박해의 잿더미와 부흥의 불씨가 공존하는 역설의 장(場)이다.
이러한 시대적 혼돈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나치 독일의 광기 어린 폭압에 맞서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다. 그는 안락한 망명의 길을 포기하고 고난의 조국으로 돌아와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그의 선택은 정치적 행위 이전에, 불의한 권력 앞에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 신앙고백적 결단이었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통렬히 비판하며, 제자도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값비싼 은혜'를 사는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했다.
오늘날 독일 땅에서 피어나는 부흥의 불씨는 본회퍼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뿌린 눈물의 기도와 순교의 피 위에 맺힌 열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의 순교자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설교를 남기고 있다. 세상의 눈에는 무력한 패배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서막이 된다. 이는 성경이 증언하는 불변의 진리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5)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세계 곳곳에서 형제들이 겪는 박해의 소식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세속적 성공과 번영이라는 '값싼 은혜'에 안주하며 시대의 어둠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금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박해의 잿더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을 증거하고, 부흥의 작은 불씨를 온 세상을 밝히는 횃불로 키워낼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기술의 진보나 정치적 안정에 있지 않고, 오직 어둠을 이기시고 온 세상을 비추시는 영원한 빛,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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