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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넘어, 깊은 곳으로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09 08:30

본문

시대의 거센 파고 앞에서 한국 교회가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속적 가치관과 반기독교적 이념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진리의 보루를 쌓아 교회의 순결과 성도들의 신앙을 지키려는 결단은 시의적절하며 마땅한 책무이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선포하는 기둥과 터로서, 비진리에 맞서 싸워야 할 사명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견고한 성벽을 쌓고 굳건한 방파제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인가. 항구의 존재 이유는 배를 영원히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라, 거친 풍랑 속에서도 배가 안전하게 재정비하여 다시 드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만일 교회가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높은 성벽을 쌓는 데에만 몰두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님의 명령을 잊은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남긴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와 이단의 위협 속에서 시작되었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큰 박해는 교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였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놀라운 역사를 증언한다. 흩어진 성도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성벽 안에 숨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흩어져, 가는 곳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의 주역이 되었다. 박해라는 거센 바람이 오히려 복음의 불씨를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하는 거룩한 도구가 된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막아내는’ 이들이기 전에, 무엇을 ‘전파하는’ 이들이었다.

오늘의 소식들은 우리에게 이러한 초대교회의 정신을 다시금 일깨운다. 영국 교회가 뉴에이지와 같은 대안적 영성에 대한 안내서를 발간한 것은, 세속 문화를 그저 정죄하고 외면하는 대신, 그 속에서 길 잃은 영혼들의 영적 갈망을 읽어내고 복음으로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선교적 시도이다. 이는 텅 빈 그물 앞에서 좌절하는 다음 세대 사역을 향해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함께 그물을 짜야 한다는 외침과도 맞닿아 있다. 파키스탄에서 들려온 미성년자 혼인을 아동 학대로 판결한 소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정의의 빛을 비추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노력이 맺은 귀한 열매이다.

우리의 사역은 방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설교단에서 ‘덜 말함’의 지혜를 통해 성도들의 영혼에 핵심 진리를 깊이 새기고,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 앞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분별력을 키우며, 스페인 내전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개신교 여성의 순교 신앙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굳건히 버티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 물결을 거슬러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견고한 방파제를 넘어,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을 위한 등대로 서야 한다. 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거룩한 방파제를 쌓는 일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방파제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성벽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넘어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셨던 그 음성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들려온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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