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의 시대, 말씀의 반석 위에 서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06 08:30
본문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유를 돕고, 예술이 공중 보건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다. 세상은 저마다의 정교한 도구와 화려한 언어로 대중에게 말을 건다. 축구 선수는 만인의 앞에서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돌리고, 전쟁의 포화 속 국가는 지도자들이 모여 기도로 영적 리더십을 구한다. 이처럼 수많은 메시지와 방법론이 범람하는 소음의 시대 속에서, 한국 교회는 과연 무엇을 붙들고 어디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직면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도구의 힘이 곧 영혼의 힘은 아니다. AI가 제시하는 유려한 문장이 성령의 감동을 대체할 수 없으며, 인간적 경험의 공감대가 진리의 일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도구와 현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 즉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반석이 무엇인지를 더욱 치열하게 묻게 만든다.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영국,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교회가 독점하던 라틴어 성경을 평범한 농부의 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자신의 생을 걸었다. 그는 “주교와 사제들이 성경을 모르게 한다면, 나는 쟁기질하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리라”고 선언했다. 그의 손에 들린 도구는 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향한 불타는 열정과, 모든 영혼에게 진리의 빛을 전하려는 사명감뿐이었다. 그는 결국 이단으로 몰려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가 번역한 성경은 훗날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틴들의 삶은 교회의 힘이 새로운 방법론이나 세상과의 연합에 있지 않음을 웅변한다. 스페인 성서공회가 190년간 묵묵히 걸어온 성경 보급의 길처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세대와 족속에게 전하는 데 있다. 사역자가 강단에서 말을 줄여야 한다는 권면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수사학을 내려놓고, 말씀 자체가 성도를 만나게 하는 겸손한 청지기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능력은 유창함이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 안에 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틴들의 영적 유산을 회복하는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도구를 탐색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한 선수가 자신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려놓는 것처럼, 우리의 유일한 소망과 방향은 오직 기록된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교회의 연합 또한 성령의 은사라는 공통분모 이전에, 오류 없는 말씀이라는 동일한 반석 위에서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시대의 풍조는 끊임없이 변하고 세상의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때에, 변치 않는 영혼의 닻이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모든 인간적 수단과 세속적 지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할 때다. 그 말씀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포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오늘날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도구의 힘이 곧 영혼의 힘은 아니다. AI가 제시하는 유려한 문장이 성령의 감동을 대체할 수 없으며, 인간적 경험의 공감대가 진리의 일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도구와 현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 즉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반석이 무엇인지를 더욱 치열하게 묻게 만든다.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영국,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교회가 독점하던 라틴어 성경을 평범한 농부의 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자신의 생을 걸었다. 그는 “주교와 사제들이 성경을 모르게 한다면, 나는 쟁기질하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리라”고 선언했다. 그의 손에 들린 도구는 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향한 불타는 열정과, 모든 영혼에게 진리의 빛을 전하려는 사명감뿐이었다. 그는 결국 이단으로 몰려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가 번역한 성경은 훗날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틴들의 삶은 교회의 힘이 새로운 방법론이나 세상과의 연합에 있지 않음을 웅변한다. 스페인 성서공회가 190년간 묵묵히 걸어온 성경 보급의 길처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세대와 족속에게 전하는 데 있다. 사역자가 강단에서 말을 줄여야 한다는 권면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수사학을 내려놓고, 말씀 자체가 성도를 만나게 하는 겸손한 청지기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능력은 유창함이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 안에 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틴들의 영적 유산을 회복하는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도구를 탐색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한 선수가 자신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려놓는 것처럼, 우리의 유일한 소망과 방향은 오직 기록된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교회의 연합 또한 성령의 은사라는 공통분모 이전에, 오류 없는 말씀이라는 동일한 반석 위에서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시대의 풍조는 끊임없이 변하고 세상의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때에, 변치 않는 영혼의 닻이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모든 인간적 수단과 세속적 지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할 때다. 그 말씀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포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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