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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의 길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8-31 08:30

본문

수단의 억류된 구호 활동가의 신음, 네팔을 덮친 대홍수의 비명,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지성의 목소리, 그리고 이탈리아의 독서율이 던지는 조용한 질문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전해진 소식들은 각기 다른 파편처럼 흩어져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의 고통과 혼돈 앞에서 교회는 성벽을 높이 쌓고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그 아픔을 끌어안을 것인가.

기독교 신앙의 심장은 ‘성육신(Incarnation)’이다. 이는 추상적 관념이나 철학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다. 영원하신 말씀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으로, 육신이라는 연약한 질그릇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신비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외면하거나 심판하기에 앞서, 먼저 그 세상의 일부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교회는 바로 이 성육신의 신비를 따라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공동체다. 수단 누바 산맥의 위험을 무릅쓰고 굶주린 영혼들 곁을 지키다 억류된 구호 활동가의 삶,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모든 것을 잃은 네팔 이재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구호단체의 손길은 바로 이 시대에 교회가 써 내려가야 할 성육신의 서사다.

나치 정권의 광기가 유럽을 집어삼키던 시절,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안전한 미국 망명길을 뿌리치고 조국으로의 귀환을 선택했다. 그는 “만일 내가 이 시기의 시련을 내 백성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의 기독교적 삶의 재건에 참여할 아무런 권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귀국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었으나, 동시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순결한 신앙고백이었다. 본회퍼의 삶은 교회가 세상의 고통을 관망하는 해설자가 아니라, 그 고통의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십자가를 지는 동행자여야 함을 피와 살로 증언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행동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개신교인이 게일어와 전통 스포츠를 마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듯, 그 사회의 문화와 언어,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는 지성적 노력을 포함한다. 이탈리아의 독서율 통계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책을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신앙은 세상의 복잡한 질문에 답할 능력을 상실하고, 공허한 구호나 맹목적 열정으로 전락하기 쉽다. 깊이 있는 독서와 신학적 성찰을 통해 단련된 정신만이, 세상의 문화를 변혁하는 성육신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한국 교회는 이제 안락한 신앙의 요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이 들리는 바로 그곳이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이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바로 그 손길이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설교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길이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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