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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에서, 교회는 무엇으로 서는가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8-27 08:30

본문

불은 인류의 오랜 동반자이자 파괴자였다. 따스한 온기로 안식을 주지만, 모든 것을 삼키는 맹렬한 재앙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마치 사방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는 포화의 불길이, 콩고의 밀림에서는 에볼라라는 질병의 불길이 생명을 위협한다. 유럽 대륙은 실제 산불과 가뭄의 열기로 신음하며, 한국 사회는 거룩한 가치를 허물려는 세속주의의 불길 앞에 5만 성도가 ‘거룩한 방파제’를 쌓아 올리는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는 무엇으로 서야 하는가. 혹자는 기독교적 가치로 사회 모든 영역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곱 산’을 정복해야 할 고지로 여긴다. 또 다른 이들은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힘을 빌려 신앙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대체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은 교회의 본질적 힘이 어디에 있는지 망각한 오만함일 수 있다.

역사는 교회의 참된 힘이 세상의 권세나 기술적 탁월함에 있지 않음을 증언한다. 주후 64년, 로마 시내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열흘간 타오른 불길에 도시의 절반 이상이 잿더미로 변하자, 폭군 네로는 성난 민심을 돌리기 위해 당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지목했다. 기독교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고, 화형대의 ‘인간 횃불’이 되어 타올랐다. 그들은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여 이 불의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적 힘으로 ‘거룩한 방파제’를 세울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불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믿음과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한 사랑뿐이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참혹한 박해를 기록하며, 그들의 순교가 오히려 로마 시민들의 동정심을 자아냈다고 증언했다. 훗날 교부 터툴리안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선언했듯, 로마를 삼켰던 것은 네로의 불길이 아니라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었다.

오늘날 콩고의 정글에서 에볼라 환자들을 돌보는 복음주의 NGO의 땀방울, 폭격의 공포 속에서도 예배와 구제를 멈추지 않는 우크라이나 교회의 기도, 그리고 벨라루스의 압제 속에서도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목회자의 저항이야말로 초대교회가 보여준 ‘순교자의 영성’을 잇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힘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며 섬기는 사랑의 힘이다. 스위스 니젠 산 정상에 올라 지역의 부흥을 위해 부르짖는 목회자들의 연합된 기도처럼, 교회의 능력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드는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불길이 거세질수록 교회는 더욱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정치적 승리나 기술적 편의에 있지 않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불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앞에서 고백했던 믿음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기둥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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