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의 기초 위에서, 진리의 파수꾼으로 서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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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의 최신 보고서는 단순한 성적 하락 이상의 암울한 시대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업 능력 저하는 교육 시스템의 실패를 넘어, 사회를 지탱하던 가정과 공동체의 가치관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주춧돌이 부식되어 가는 것을 목도하는 듯, 우리는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위기 앞에 서 있다. 이 위기의 핵심에는 ‘진실성’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균열은 우리의 일상이라는 가장 미세한 실금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자리에 없다”는, 사회생활의 편의를 위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시험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작은 거짓을 용인하고 타인에게 동조를 강요하는 행위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이다. 사소해 보이는 이 타협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진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회를 만든다.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정교회를 압제의 도구로 ‘무기화’하는 극단적인 현실은, 진리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적 증거다.
역사는 진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16세기 영국, 헨리 8세의 이혼과 수장령(首長令)에 반대하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로버트 볼트의 희곡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에서 그는 자신을 물을 담는 ‘잔’에 비유한다.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내 손에 내 영혼을 잔처럼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것을 버린다면, 나는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그는 왕의 총애도, 가족의 애원도 뒤로한 채 자신의 양심이라는 잔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단두대에 올랐다. 사소한 맹세 하나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사소함’이 자신의 영혼 전부와 맞닿아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바로 이 ‘진리의 파수꾼’으로 부름받고 있다. 우리의 사회 참여는 정치적 승리를 목표로 하는 세력 다툼이 아니라, 무너진 세상의 기초 위에 진리의 벽돌을 한 장씩 다시 쌓아 올리는 거룩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난다. 장애를 가진 이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은사를 지닌 동등한 지체로 바라보는 것 역시 진리의 시선이다. 세상의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한 사람 안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을 진실하게 바라볼 때, 공동체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교회는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맞서 진리를 선포해야 할 예언자적 사명을 지녔다. 그 시작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부터다. 가장 작은 말 한마디에서부터 정직을 선택하고, 불의한 권력의 강요 앞에서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연약한 이웃을 진실한 사랑으로 끌어안는 교회가 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참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가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15).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한국 교회가 진리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시대를 밝히는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거대한 균열은 우리의 일상이라는 가장 미세한 실금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자리에 없다”는, 사회생활의 편의를 위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시험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작은 거짓을 용인하고 타인에게 동조를 강요하는 행위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이다. 사소해 보이는 이 타협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진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회를 만든다.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정교회를 압제의 도구로 ‘무기화’하는 극단적인 현실은, 진리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적 증거다.
역사는 진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16세기 영국, 헨리 8세의 이혼과 수장령(首長令)에 반대하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로버트 볼트의 희곡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에서 그는 자신을 물을 담는 ‘잔’에 비유한다.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내 손에 내 영혼을 잔처럼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것을 버린다면, 나는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그는 왕의 총애도, 가족의 애원도 뒤로한 채 자신의 양심이라는 잔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단두대에 올랐다. 사소한 맹세 하나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사소함’이 자신의 영혼 전부와 맞닿아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바로 이 ‘진리의 파수꾼’으로 부름받고 있다. 우리의 사회 참여는 정치적 승리를 목표로 하는 세력 다툼이 아니라, 무너진 세상의 기초 위에 진리의 벽돌을 한 장씩 다시 쌓아 올리는 거룩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난다. 장애를 가진 이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은사를 지닌 동등한 지체로 바라보는 것 역시 진리의 시선이다. 세상의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한 사람 안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을 진실하게 바라볼 때, 공동체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교회는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맞서 진리를 선포해야 할 예언자적 사명을 지녔다. 그 시작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부터다. 가장 작은 말 한마디에서부터 정직을 선택하고, 불의한 권력의 강요 앞에서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연약한 이웃을 진실한 사랑으로 끌어안는 교회가 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참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가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15).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한국 교회가 진리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시대를 밝히는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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