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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인간의 계획, 그 폐허 위에 심기는 하나님의 참나무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06 08:30

본문

스페인 정가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출범 3년 만에 스스로 임기를 단축한 정부는 해결되지 못한 과오와 미완의 과제를 인정하며 국민에게 다시 한번 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는 비단 한 나라의 정치적 현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 놓쳐버린 기회, 어긋나버린 관계 등 개인의 삶 역시 수많은 계획의 파편들로 얼룩져 있다. 이처럼 거시적 사회 구조부터 미시적 개인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계획은 본질적으로 유한하며 언제든 좌초될 수 있는 연약함을 내포하고 있다.

독일 쾰른 대성당의 역사는 이러한 인간 계획의 유한성과 그것을 뛰어넘는 신적 섭리의 장엄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화다. 1248년, 고딕 양식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했던 건축가들의 원대한 계획으로 첫 삽을 떴지만, 공사는 수백 년간 중단된 채 앙상한 골조와 미완의 탑을 흉물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최초의 설계자들은 그 누구도 완성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들의 계획은 실패한 듯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이 멈춘 그 폐허 위에서 하나님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성당은 마침내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고, 이는 한 세대의 계획이 아닌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섭리의 성취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적 혼란과 개인적 실패의 폐허는 바로 이 쾰른 대성당의 중단된 공사 현장과 같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쌓아 올리려던 바벨탑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유럽의 영적 갱신을 논하며 한 신학자가 나누어 준 작은 ‘도토리’의 비유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소망을 제시한다. 눈앞의 거대한 참나무가 아닌, 그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작은 도토리, 즉 복음의 잠재력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계획이 무너진 바로 그 자리야말로, 하나님의 참나무가 심길 가장 비옥한 토양이다.

성경은 이 신비를 오래전부터 증언해왔다. 이사야 선지자는 절망과 포로 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전을 선포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오랫동안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졌던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사야 61:3-4)

재와 슬픔, 근심의 땅에 ‘의의 나무’를 심어 그들로 하여금 황폐한 곳을 다시 일으키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세상의 실패한 계획을 비판하거나 또 다른 인간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회는 스스로가 세상의 폐허 위에 심긴 하나님의 ‘의의 나무’임을 자각해야 한다. 스페인의 정치적 공백과 우리 삶의 예기치 못한 공백은 절망의 공간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도토리가 뿌리내려 거대한 숲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의 기회다. 한국 교회는 이제, 인간의 계획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신뢰하며, 묵묵히 시대를 일으켜 세울 참나무로 자라나야 할 거룩한 책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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