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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원주민'에서 시민으로… 식민 통치하 권리와 저항의 여정

노형석 기자
작성일 2026-09-1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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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아프리카인들이 포르투갈 제국 통치하에서 '원주민(Indigenous)'이라는 법적 범주에 묶여 시민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얻기까지 겪었던 저항과 변화의 역사가 조명됐다.

17세기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포르투갈 제국 통치 시기, 모잠비크에서 '원주민'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아프리카인을 지칭하는 용어를 넘어선 법적 지위였다. 이는 권리, 의무, 그리고 삶의 가능성을 결정짓는 굴레였다. 롱가(Ronga), 창가(Changan) 등 지역 공동체를 포함한 모잠비크의 아프리카인들에게 식민 경험은 국가 앞에서 깊은 불평등을 의미했다. 모잠비크에서 태어난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유럽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수 없었다.

포르투갈 식민 통치 시스템은 '원주민', '동화된 자(assimilated)', 그리고 '포르투갈 시민'으로 엄격히 구분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인은 '원주민' 범주에 속했으며, 정규 교육, 전문직 취업, 공직 진출 등 기회에 대한 접근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특히 교육 시스템은 이러한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식민 통치자들의 자녀들이 정규 학교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인들은 식민 경제 내에서 하위 직책을 맡도록 준비시키는 차별적인 교육 시스템에 직면했다. 학교는 단순한 학습의 장이 아니라 사회 조직의 도구로 기능했다.

시골 지역에서 '원주민'들의 삶은 세금, 노동 의무, 그리고 식민 경제의 필요에 의해 규정되었다. 모잠비크 남부 지역의 이러한 계층적 현실은 남아프리카와의 근접성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남성들이 국경을 넘어 남아공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건너갔고, 그들이 가족에게 보낸 수입은 많은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경제 기반이 되었다. 노동 이주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모잠비크 가족과 남아공 광산 경제 모두를 지탱하는 지역 경제 시스템의 일부였다.

식민 통치의 불평등은 토지와의 관계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아프리카 공동체는 자체적인 토지 조직 및 이용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소유권과 권위는 식민 권력에 종속되었다. 식민 정부는 아프리카인들의 토지 소유 및 이용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출처: Global Voices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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