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리트 NBD, 비트코인 ‘디지털 금’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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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를 대표하는 국영 금융기관 중 하나인 Emirates NBD가 비트코인(BTC)을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 공식 평가하며 자산 포트폴리오 편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암호화폐 투자 검토 차원을 넘어, 전통 금융권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번 발언은 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 모리스 그라비어가 글로벌 경제 매체 CNBC 인터뷰에서 밝힌 것으로, 그는 “비트코인은 고정된 공급량과 강력한 작업증명(Proof of Work) 기반 보안 모델을 갖춘 가치 저장 수단”이라며 “초기에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려는 실험적 자산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디지털 시대의 금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 ‘디지털 금’ 내러티브의 제도권 확산
비트코인을 금과 비교하는 논리는 새롭지 않다. 2100만 개로 한정된 발행량,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 그리고 네트워크 참여자에 의해 유지되는 탈중앙적 보안 모델은 오랜 기간 금의 희소성과 유사한 속성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이번 발언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중동 최대 금융기관 중 하나이자 UAE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Emirates NBD가 이를 공식 투자 전략 검토 대상으로 언급했다는 점은, 비트코인이 더 이상 변방의 대체자산이 아니라 기관 자산배분 모델에 포함될 수 있는 ‘검토 대상’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UAE는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대표적 친(親)암호화폐 국가다.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별도의 가상자산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고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 왔다.
이런 정책 환경 속에서 대형 은행이 비트코인을 장기 가치 저장 자산으로 인정한 것은 정책과 금융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 신중하지만 전략적인 접근
다만 은행 측은 과열된 기대에 선을 긋는 모습도 보였다. 그라비어 CIO는 비트코인의 높은 가격 변동성과 시장 리스크를 인정하며, 단기 분산투자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제안된 접근 방식은 포트폴리오의 약 0.5% 수준을 비트코인에 배분하는 전략이다. 이 수치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Emirates NBD의 총자산은 약 1조 디르함(한화 수백조 원 규모)에 달하며, 자산운용 부문만 해도 약 160억 달러를 관리한다. 이 중 0.5%만 편입하더라도 수억 달러 단위의 자금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관 자금의 특징은 단기 투기 자금과 달리 장기 보유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소규모 전략적 배분은 시장에 구조적 안정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이더리움·솔라나보다 비트코인”
은행 측은 다른 주요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더리움(ETH)이나 솔라나(SOL)와 같은 플랫폼형 블록체인은 기술 혁신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지위는 비트코인이 가장 확고하다는 평가다.
이는 기관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관점이 ‘기술 혁신’보다는 ‘자산 배분’에 더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통 금융권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네트워크 활용도나 생태계 확장성이 아니라, 희소성과 신뢰성, 그리고 장기적 가치 보존 능력이다. 이 기준에서 비트코인은 가장 명확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 글로벌 제도권 편입 흐름과 맞물린 행보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태도를 점진적으로 바꿔왔다. 미국에서는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 유입이 본격화됐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규제 프레임워크가 정비되며 은행·자산운용사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중동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UAE는 규제 명확성과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디지털 자산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Emirates NBD의 이번 발언은 단발성 이벤트라기보다는 구조적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 비트코인의 위상 변화, ‘투기 자산’에서 ‘전략 자산’으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트코인은 극단적 변동성을 가진 투기적 자산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기관 투자자의 참여, 규제 체계 정비, 글로벌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그 성격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변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발행량이 고정된 디지털 자산은 일부 투자자들에게 대안적 헤지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금이 오랜 세월 동안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면, 비트코인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실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 중동발(發) 신호, 글로벌 금융 지형에 파문
Emirates NBD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투자 검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전통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제도권 자산군의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사례이며, 향후 다른 중동 및 글로벌 금융기관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변동성과 규제 리스크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가 대형 은행의 자산 배분 전략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
비트코인이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는 혁명적 수단이 될지, 아니면 금과 유사한 보완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계 주요 금융기관이 더 이상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에, 중동의 대표 금융기관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C) 기독교마라나타신문 202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