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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채시장, 블록체인 전환 본격화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2-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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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HSBC의 블록체인 플랫폼 ‘오리온’을 통해 단기물 디지털 국채(DIGIT) 시범 발행에 착수하며 주권 채무 시장의 온체인 전환을 본격 시험한다.


영국이 주권 채무 시장에 분산원장기술(DLT)을 본격 접목하는 첫 실전 테스트에 돌입했다. 영국 재무부(HM Treasury)와 채무관리청(UK Debt Management Office, DMO)은 규제 샌드박스 환경에서 단기물 디지털 국채를 시범 발행하는 ‘디지털 길트 인스트루먼트(Digital Gilt Instrument, DIGIT)’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글로벌 금융그룹 HSBC의 토큰화 플랫폼 ‘오리온(Orion)’을 기술 파트너로 선정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발행·양도·결제 전 과정을 분산원장에서 병행 검증하는 구조를 통해 실제 비용 절감 효과와 법·제도적 정합성을 점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국채는 각국 금융시스템의 기준금리 형성과 유동성 공급, 담보 체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의 토큰화 실험은 자본시장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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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온체인 결제’ 검증


DIGIT 파일럿은 기존 국채 인프라를 즉각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행 시스템을 유지한 채 분산원장 기반 구조를 병행 검증하는 ‘이중 트랙’ 접근을 택했다. 이는 영국 금융당국 특유의 점진적·보수적 규제 철학을 반영한 설계로, 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기술적 효용을 실증하겠다는 의도다.


프로젝트는 감독당국이 통제하는 규제 샌드박스 내에서 운영되며, 실제 발행 환경과 최대한 유사한 조건을 반영하되 거래 규모와 만기 구조를 조정해 시장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된다. 


법률 자문은 글로벌 로펌 Ashurst LLP가 맡아, 토큰화된 국채 구조가 기존 증권법·세법·결제 관련 규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정교화한다.


영국 재무부 경제 담당 장관인 Lucy Rigby는 “영국 최초의 디지털 길트 인스트루먼트 발행을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공공 부채 관리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증된 민간 파트너와 협력해 신중하면서도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HSBC ‘오리온’, 검증된 토큰화 인프라 선택


기술 파트너로 낙점된 HSBC의 오리온 플랫폼은 이미 복수 국가와 기업의 채권 토큰화 프로젝트를 지원한 경험을 갖고 있어, 대규모 거래 처리 능력과 운영 안정성 측면에서 일정 수준의 검증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라는 보수적 자산군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만큼, 완전히 실험적인 인프라보다는 실제 운용 이력이 있는 플랫폼을 채택해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채는 중앙은행, 상업은행, 연기금, 보험사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광범위하게 보유하는 기초 자산이기 때문에, 거래 안정성과 기록의 불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리온을 통해 구현되는 DIGIT 구조는 발행 시점부터 이자 지급, 권리 이전, 만기 상환까지 채권 생애주기를 온체인에서 추적·기록하며, 동시에 기존 중앙 장부 시스템과의 정합성을 병행 검증하는 형태로 설계된다. 이는 ‘완전한 탈중앙화’보다는 ‘제도권과의 접점 확장’에 무게를 둔 하이브리드 모델에 가깝다.


결제 속도·커스터디·세제까지, 실용성의 시험대


DIGIT 파일럿의 성패는 기술적 혁신성보다는 ‘실용적 지표’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당국이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항목은 △결제 속도 단축 여부 △운영 비용 절감 규모 △수탁(커스터디) 구조의 안전성 △2차 시장 접근성 △세무·회계 처리의 명확성 등이다.


특히 온체인 결제가 이자 지급과 상환 절차를 자동화할 경우, 기존 T+1 또는 T+2 체계 대비 어느 정도의 효율 개선이 가능한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동시에 이자소득세, 양도차익 과세 등 세무 이벤트가 블록체인 상에서 어떻게 식별·보고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검증 과제다. 


자동화가 오히려 규제 준수의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도록 촘촘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단순한 기술적 상징성만으로는 토큰화 국채가 확산되기 어렵다고 본다. 비용 절감과 리스크 감소 효과가 수치로 확인될 때에만, DIGIT는 회사채·자산유동화증권(ABS)·펀드 지분 등으로 확장되는 디지털 증권(DST) 생태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늦었지만 신중한 출발, 런던의 전략적 선택


디지털 국채 구상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시장에서 거론돼 왔지만, 실제 착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복수의 글로벌 금융기관과 인프라 사업자들의 제안을 비교·검토하며 기술적·법적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런던 금융허브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으며, DIGIT는 그 연장선상에서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험으로 해석된다. 국채라는 가장 보수적인 자산군에 토큰화를 적용해 성공 사례를 만들 경우, 런던은 글로벌 토큰화 금융의 표준 설계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토큰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결제 리스크가 줄어들고, 운영비가 절감되며,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점이 명확히 입증될 때에만 디지털 길트는 제도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주권 채무 시장의 ‘실전 테스트, 글로벌 파급효과 주목


HSBC 오리온을 활용한 DIGIT 파일럿이 본격 가동되면서, 영국은 주권 채무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실전 적용을 시험하는 선도 사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이번 실험은 단순히 영국 내부 정책에 그치지 않고, 다른 주요국의 국채·공공채 토큰화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국채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담보·유동성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 영역에서 온체인 결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토큰화 예금, 기관용 스테이블코인 등과 결합해 보다 통합된 디지털 자본시장 인프라로 발전할 여지도 있다.


결국 DIGIT 프로젝트는 “국채를 토큰화할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 질문을 넘어, “주권 금융 인프라가 어디까지 디지털 전환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제도적·전략적 질문을 던진다. 영국의 신중한 첫걸음이 글로벌 채권시장의 구조 변화를 촉발할 신호탄이 될지, 시장은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C) 기독교마라나타신문 20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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