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은행 예금까지 온체인으로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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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핵심 수탁은행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을 구분하던 경계선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은행 예금이라는 금융 시스템의 가장 보수적인 영역이 온체인(on-chain)으로 확장되는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집중된다.
미국 최대 수탁은행 가운데 하나인 뉴욕멜론은행(BNY Mellon)은 최근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토큰화 예금(Tokenized Deposit)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이는 고객의 현금 예금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블록체인 상에 표시해, 자금 이동과 결제, 담보 관리 등을 은행 영업시간과 무관하게 상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서비스다.
월가의 중심에서 전통 금융을 상징해 온 수탁은행이 예금이라는 핵심 자산을 블록체인 레이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금융 산업 전반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 은행 신뢰 위에 올린 블록체인
BNY 멜론이 강조하는 핵심은 이번 서비스가 기존 은행 예금을 대체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객의 예금 잔고는 기존과 동일하게 전통적인 은행 장부 시스템에 기록되며, 동시에 블록체인 상에서는 해당 잔고를 반영한 디지털 토큰이 병행 표시된다.
다시 말해, 예금의 법적·회계적 지위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 그대로 유지하면서, 운영 효율성과 속도만 블록체인을 통해 확장한 구조다.
은행이 직접 운영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자금 이동과결제는 외부 퍼블릭 체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동성이나 규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은행 수준의 통제와 보안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기관 고객들은 담보 이전, 마진 정산, 내부 결제 등을 실시간에 가깝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BNY 멜론의 최고제품·혁신책임자인 캐럴린 와인버그는 “신뢰받는 은행 예금을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함으로써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라며, “이는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실행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의 신뢰와 규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블록체인의 장점을 흡수했다는 점에서, 이번 서비스는 ‘은행 주도형 온체인 금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 ‘항상 열려 있는 금융시장’으로의 전환
토큰화 예금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 시장 환경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기관 투자자들은 보다 빠르고 즉각적인 자금 이동 능력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기존 은행 시스템은 영업시간 제한, 다단계 결제 절차, 청산 지연 등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BNY 멜론은 금융 시장이 이미 ‘항상 열려 있는(always-on)’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글로벌 자산 시장은 24시간 움직이지만, 자금의 이동은 여전히 은행 영업시간에 묶여 있는 모순이 존재했다.
토큰화 예금은 이러한 마찰을 줄이고, 자금이 자산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된다.
특히 파생상품 거래나 증거금 거래, 기관 간 대규모 담보 이동이 빈번한 시장에서는 자금 이동 지연 자체가 리스크로 작용한다. 토큰화 예금은 이러한 영역에서 운영 리스크를 낮추고 유동성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평가다.
▶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의 접점 확대
이번 프로젝트에는 전통 금융권뿐 아니라 디지털 자산 업계의 주요 기업들도 참여했다. 리플(Ripple)과 서클(Circle)은 이번 토큰화 예금 서비스의 초기 파트너로 합류하며, 실물 금융과 디지털 금융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클의 전략 책임자이자 글로벌 정책·운영 총괄인 단테 디스파르테는 이번 사례를 두고 “글로벌 대형 은행이 요구하는 안전성과 규제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을 연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 인프라를 구축해 온 디지털 자산 기업 입장에서도, 대형 은행과의 직접적인 협업은 제도권 진입의 중요한 이정표다.
리플의 자회사 리플 프라임(Ripple Prime) 역시 초기 활용 기업으로 참여했다. BNY 멜론이 이미 리플의 RLUSD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수탁을 맡고 있는 만큼, 이번 협업은 리플의 기관 유동성 관리 및 결제 인프라 영역을 한층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리플 프라임 측은 “디지털 자산이 은행 시스템의 외부가 아닌 내부로 들어오는 전환점”이라고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 토큰화 예금, 스테이블코인과는 무엇이 다른가
토큰화 예금은 종종 스테이블코인과 비교되지만, 구조적으로는 명확한 차이를 가진다. 스테이블코인이 블록체인 상에서 독립적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화폐라면, 토큰화 예금은 기존 은행 예금의 디지털 표현에 가깝다.
즉, 예금의 주체와 책임은 은행에 있으며, 토큰은 이를 기술적으로 확장한 수단이다. 이러한 구조는 규제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은행 예금은 이미 명확한 법적 지위와 감독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토큰화 예금은 상대적으로 규제 불확실성이 낮은 온체인 금융 모델로 평가된다.
이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퍼블릭 스테이블코인 대신 토큰화 예금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월가의 실험, 금융 인프라의 방향을 바꾸다
BNY 멜론의 이번 행보는 단일 은행의 신사업 출시를 넘어, 금융 인프라 전반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JP모건, HSBC 등 글로벌 대형 은행들도 이미 예금 토큰화, 내부 결제용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전통 금융은 점차 디지털 자산 기술을 ‘외부 실험’이 아닌 ‘핵심 운영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은행 예금이 온체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블록체인이 더 이상 변두리 기술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뢰와 규제를 중시하는 수탁은행이 선택한 블록체인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례는 향후 금융 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 전환을 완성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로 남을 전망이다.
(C) 기독교마라나타신문 2026-01-17
